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 부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되었다.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밝혀지길 원했고, 안전불감증과 혼란스러운 상황 속 지도층의 무능력함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아직도 5명의 희생자는 유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차가운 바닷속에 잠들어있다. 방현석의 <세월>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비극적인 수학여행이 아닌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의 희생에 주목했다. 슬픔과 애도로부터 소외된 한 다문화가정의 실화를 바탕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한국으로 시집간 ‘린’의 아버지 ‘쩌우’의 입장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분량은 짧지만, 그 속에는 베트남 전쟁 중 배에 끝까지 남아 나머지 선원을 탈출시키고 희생한 ‘도안 아저씨’와 세월호 사건 당시 잘못된 통제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한 고위층을 대조하여 당시 그들의 무책임한 행보를 강조한다.
<세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쩌우는 베트남 까마우라는 지역에서 어부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17살 때 해방 전선에 투입된 쩌우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에 맞서 싸웠다. 어쩌면 그 영향으로 자본주의를 탐탁지 않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린이 한국으로 시집가고 이웃들은 그를 부러워하며 칭찬했지만, 다달이 돈이 들어오는 통장을 보고 그저 돈의 액수가 아닌 딸이 잘 지내고 있다는 안도의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딸이 한국에 팔려 가는 것 같은 느낌에 처음에는 사위를 반갑게 맞이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위에게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린의 가족들이 고향 집으로 오기 전, 집수리로 돈이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의 전면에 흰색 페인트를 칠한 것을 통해 린이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쩌우의 열망을 엿볼 수 있었다. 린은 아들 ‘시우’와 딸 ‘시현’ 그리고 남편과 제주도에서의 새 삶을 꿈에 안은 채 세월호에 탑승했다. 그러나 부푼 기대감은 얼마 가지 못하고 바닷속 깊이 가라앉았다. 전원 구조라는 소식에 안도했지만, 구조된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쩌우는 작은딸 ‘로안’과 도안 아저씨의 딸 ‘투이’와 함께 한국으로 향한다. 사고 후 일주일 만에 린을 마주한 쩌우는 학급 부반장이었던 ‘송희’의 아버지 ‘박’씨로부터 황당하고 비참한 축하를 받는다.
심장이 잘못하여 머리 위에 놓이니 나라의 운명이 바다 깊이 가라앉았네.
린이 어린 시절 쩌우가 들려준 시의 한 구절은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사고와 연관된 세월호 관계자, 배에 올라타지도 않고 소극적이었던 해경, 10년이 지난 지금도 원인을 확증할 수 없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한계를 드러낸다. 바다에서 난 교통사고를 가지고 나라를 시끄럽게 한다며 소리치던 한 노인에게 박씨는 수천억을 준다고 해도 자식과 바꿀 수 없다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현금을 모두 내밀었다. 세월호 참사라는 사회적 비극이자 진실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방현석 작가는 안타까운 사고로 인해 소중한 가족을 잃은 것으로 모자라 사회적 비난까지 견뎌야 했을 유가족들의 투쟁을 생생하게 그려냄과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의 차가운 뒷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소설의 문체는 마치 그날 바다의 파도를 말해주는 것 같다. 발단 부분에서는 담담하게 이야기하다가 절정과 결말에 이르러서는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간 선장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는 듯 파도치면서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제시한다.
'일상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과 현재, 변하지 않는 사랑 - 이순구 작가의 <조선의 가족 천 개의 표정>을 읽고 (2) | 2025.01.02 |
---|---|
빨간지구 색칠하기 - 조천호 작가의 <파란하늘 빨간지구>를 읽고 (2) | 2025.01.02 |